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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아, 잘해보자/자고 있지 않은 너에게 #자정묵상

#유다서 1장 17-25절

by CloudChurch2020 2020. 10. 12.
본문은 성서일과에 따라 새번역으로 소개합니다.

17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예고한 그 말을 기억하십시오. 
18   그들은 여러분에게 말하기를, "마지막 때에는 여러분을 조롱하는 자들이 나타나서, 자기들의 경건하지 못한 욕정을 따라 살 것입니다" 하였습니다. 
19   이 사람들은 분열을 일으키는 자들이며, 성령을 받지 않고 본능대로 사는 자들입니다. 
20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가장 거룩한 여러분의 믿음을 터로 삼아서 자기를 건축하고, 성령으로 기도하십시오. 
21   하나님의 사랑 안에 머무르면서 자기를 지키고, 영생으로 인도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자비를 기다리십시오. 
22   의심을 하는 사람들을 동정하십시오. 
23   또 어떤 부류의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들을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해 주십시오. 또 어떤 부류의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들을 두려운 마음으로 동정하되, 그 살에 닿아서 더럽혀진 속옷까지도 미워하십시오.
24   여러분을 넘어지지 않게 지켜 주시고, 여러분을 흠이 없는 사람으로 자기의 영광 앞에 기쁘게 나서게 하실 능력을 가지신 분, 
25   곧 우리의 구주이시며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께 영광과 위엄과 주권과 권세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원 전에와 이제와 영원까지 있기를 빕니다. 아멘.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라는 행위예술가가 있습니다. 그녀의 가장 유명한 '리듬0' 퍼포먼스는 탁자 위에 장미, 깃털, 꿀, 채찍, 올리브오일, 가위, 해부용 칼, 총 등 72가지를  나열해 놓고 6시간동안 이 예술가의 신체를 관객들로 하여금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주저하던 사람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과감해지고 거칠어졌고, 결국 머리에 총을 겨누는 사람까지 있었습니다. 6시간이 지나고 그녀가 관객들을 향해 걸어가자 모두들 도망갔다고 하네요. 그 때 그녀는 이미 '훼손된다는 것'을 경험했고, 이대로 계속 그대로 내버려 둔다면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잘못된 방향의 경험이 누적되고 쌓일 때, 방향을 전환하지 않으면 그 끝이 결코 아름답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본능을 쫓아 살도록 내버려둔다면, 우리 주변에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요? 오늘 말씀을 읽으면서 이 작품이 떠올랐습니다. "훼손하고 훼손당하는 경험", 그것이 6시간이 아니라 평생이 된다면 그 시간이 서로에게 얼마나 두렵고 견디기 힘들까요? 우리가 믿음을 터로 삼아서 우리 자신을 건축하고 성령으로 기도해야 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누구나 내 마음대로 내 생각대로 사는 삶에 매력을 느낍니다. 그렇지만 혼자 살아가는 세상이 아닌 이상 반드시 지켜야할 선이 있고, 그 선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우리가 종종 그게 별거야?라고 여기는 바른 '믿음', '신앙생활'에서 온다는 것을 꼭 기억하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넘어지지 않게 지켜주시고, 흠이 없게 하시는 분입니다. 그 하나님이 오늘도 우리와 함께 하시길 기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미리 예고한 말씀이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경건하지 못한 욕정을 따라" 사는 사람들이 나타나 분열을 일으켜 버립니다. 분별과 분열은 전혀 다른 거지요. 분별은 거룩하게 즉 성령을 의지하여 구분 짓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열은 깨지는 것 즉, 성령을 무시하고 성령과 상관 없이 자기의 본능대로 하려다가 공동체에 균열을 내는 것이지요.
분별은 성령을 의지하기 때문에 성령의 마음인 "긍휼과 자비"를 품고 있습니다. 22-23절의 말씀은 분별의 특징들인데, 어떤 사람들일지라도 동정하는 마음을 품고 그들을 위해 불에서 끌어내는 용기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더럽혀진 속옷" 즉 "죄를 품은 마음"은 명확하게 미워하게 됩니다. 이것이 분별입니다. 분열은 성령의 마음이 없습니다. 오직 자신의 마음, 본능대로 행동하기 때문에 자신이 유익하다 싶으면 품고 자신에게 무익하다 싶으면 버립니다. 그 결과 처절하게 깨지고 부숴져서 상처만이 남게 되지요. 지금 교회는 어떤 모습일까요? 분별하는 중일까요? 분열되는 중일까요?

유다서의 저자는 당대 믿음의 사람들에게 '조롱하는 이들이 나타나 분열을 일으키고, 성령이 아닌 본능과 욕정을 따라' 살아갈테지만 그들과 다른 삶을 살아야 함을 권면합니다. 그 권면의 첫 구절에 부담스런 표현이 나옵니다. 여러분은 "가장 거룩한" 여러분의 믿음을 터로 삼아서.... 그냥 '거룩한'도 아니고 '가장 거룩한' 이랍니다. 이 말씀을 보면서 부담이 됩니다. 나의 삶과 내면이 떠오르면서 '나는 그렇게 거룩하지 않은데'라는 가장 거룩한 '여러분의 믿음'이라니 이질감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위의 최상급 형용사가 꾸미려는 명사는 '여러분'이라기보다 '믿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나는 천박하고 교만하고 거짓되지만, 내가 믿는 분은 거룩하시고 겸손하시고 정직하십니다. 그래서 그분을 믿는 우리의 믿음은 가장 거룩하다는 이 꾸밈 말에 적합합니다. 나의 어떠함이 아니라, 믿음의 대상이신 예수님, 믿는 바 내용인 진리 때문에 말입니다. 우리 자신이 아니라 우리가 믿는 분, 믿는 바 예수님과 진리에 집중하는 오늘 하루, 우리의 삶이 되길 소망합니다.

영적인 일에만 가치를 두고 일상에서의 거룩한 삶은 부정했던 영지주의자들은 초대 그리스도교 공동체에 큰 위협이었습니다. 이들은 성령의 일들보다는 인간의 본능에 더욱 집중했던 자들이었기에 도덕적인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았었지요. 영적인 가치는 우리의 삶을 통해 증명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말씀은 거룩함 위에 우리의 삶을 세우라고 말씀합니다. 과거 이스라엘 민족의 어려움을 보아도 하나님을 향한 예배의 모자람 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자신들의 삶에서 행하지 않았던 도덕적 책임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이어졌음을 우린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은 입술의 고백과 손발의 행함을 따로 두시는 분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가 삶에서 실천해야 할 거룩한 선행을 주저하지 말고 살아냄으로, 우리의 믿음이 더욱 굳건히 세워지기를 소망합니다. 

넘어지지 않게, 흠이 없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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