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은 성서일과에 따라 새번역으로 소개합니다
1. 천사는 또, 수정과 같이 빛나는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여 주었습니다. 그 강은 하나님의 보좌와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흘러 나와서,
2. 도시의 넓은 거리 한가운데를 흘렀습니다. 강 양쪽에는 열두 종류의 열매를 맺는 생명 나무가 있어서, 달마다 열매를 내고, 그 나뭇잎은 민족들을 치료하는 데 쓰입니다.
3. 다시 저주를 받을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그 도성에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가 도성 안에 있고, 그의 종들이 그를 예배하며,
4. 하나님의 얼굴을 뵐 것입니다. 그들의 이마에는 그의 이름이 적혀 있고,
5. 다시는 밤이 없고, 등불이나 햇빛이 필요 없습니다. 그것은 주 하나님께서 그들을 비추시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영원무궁 하도록 다스릴 것입니다.
6. 천사가 또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믿음직하고 참되다. 예언자들에게 영을 내려 주시는 주 하나님께서 자기의 종들에게 곧 일어날 일들을 보여 주시려고, 자기의 천사들을 보내셨다.
7. '보아라, 내가 곧 오겠다' 하신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여라." 이 책에 기록된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
8. 이 모든 것을 듣고 본 사람은 나 요한입니다. 내가 이 모든 것을 듣고 볼 때에, 이것들을 내게 보여 준 그 천사의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려고 하였더니,
9. 그가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이렇게 하지 말아라. 나도, 너와 너의 동료 예언자들과 이 책의 말씀을 지키는 사람들과 같은 종이다. 경배는 하나님께 드려라."
생명을 생명되게 하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하는 것이 있다면, 물과 빛입니다. 생명수의 강, 하나님의 빛, 이 두가지가 충족되는 모든 환경에서 생명은 충만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곳이 곧 생명입니다. 우리의 세계는 생과 멸이 공존하고 뒤엉켜있는 모순의 나라이지만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에 온통 가득한 생명은 유지되고 지속되고 치유됩니다. 생의 우연과 멸의 필연을 극복합니다. 멸이 없는 생. 우리는 그것을 영원한 생명이라고 부릅니다. 이 놀라운 일들은 믿음직하고 참된 말씀을 통해서, 그 말씀을 기억하고 지키는 사람들을 통해서 일어날 것입니다.
오늘 말씀 속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예배한다'는 말씀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찬양하고 기도하는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오늘 이 '예배한다'는 말씀을 예전적인 퍼포먼스보다는 하나님만을 왕으로 모시고 세상의 권세에 머리숙이지 않은 자들의 삶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예배한다'는 단어인 '라트류오'는 '섬기다'의 의미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계시록이 기록될 당시 그리스도인들의 고난은 '누구를 섬기는가?', '누구를 왕으로 모시는가?'에 기인한 것이었습니다. 예배의 장소가 어떻고, 몇 명이 모였고, 어떤 형식을 갖췄고의 문제는 정말 부차적인 문제였겠지요. 이들에게 있어 예배는 하나님을 자신의 왕으로 고백하는 행위였고, 그 삶을 살아감으로 당하는 고난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위로하시고 격려하시는 것을 우린 계시록의 말씀을 통해 배울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의 예배는 어때야 할까요? 찬양을 흥얼거리는 것도 좋지만, 그 찬양의 고백처럼 우리 삶의 주인이 주님이시고, 우리가 그분만 섬기는 삶을 진짜로 살아나가는 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오늘 말씀을 읽는데 계속 기분이 좋습니다. 그토록 소망하고 꿈꾸던 "하나님나라"의 모습이 그려지면서 너무 좋습니다. 그러는 중에 마지막 9절 말씀에서 책상을 몇 차례나 쳤습니다. 정말 귀하고 중요한 깨우침이었기 때문입니다. 천사가 이렇게 말하죠. "나도, 너와 너의 동료 예언자들과 이 책의 말씀을 지키는 사람과 같은 종이다." 오늘 우리가 정말 뼈아프게 들어야 할 말씀이라서 말입니다. 이 땅에 사는 우리는 모~두, "말씀을 지키는 종이다."라는 외침이 이 시대에 정말 필요한 말씀 아닐까요? 교회가 세워지고 공동체를 이루어가는데 있어서, 분명 "우리는 모두! 말씀을 지키는 종"으로서의 자리를 반드시 지켜져야 할 말씀 아닐까요? 맡고 있는 역할과 그 분량의 차이는 있을 순 있어도, 우리는 분명 "말씀을 지키는 종"일 뿐이죠. 이것이 바로 지켜진다면, 예수님의 말씀 그대로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겠지요. 오늘도, 내일도, 나도, 너도, "말씀을 지키는 종"으로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다시는 밤도 없고(5절) 저주 받을 일이 없습니다.(3절) 그리고 등불이나 햇빛도 없습니다.(5절) 그 나라에 밤이나 저주 받을 일이 없는 것은 어렵지 않게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밤의 이미지와 반대되는 등불이나 햇빛도 없는 걸까요?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직접 비추시기 때문입니다.(5절) 하나님의 빛되심이 온전하게 드러나는 나라, 하나님께서 영원히 다스리시는 나라가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 나라가 속히 임하였으면 좋겠습니다.
불을 밝혀 어둠을 몰아내려고 애써 하지만, 거센 바람에 흔들리는 촛불처럼 위태하기 짝이 없는 모습과 닮아 있는 오늘날의 교회, 아니 나의 모습을 보며, 등불도 햇빛도 필요 없는, 온전히 하나님만 빛나시기에 어둠도, 저주받을 일도, 눈물도 고통도, 아픔도 상처도 없는 그 나라를 더욱 소망해봅니다. 마라나타!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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