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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아, 잘해보자/자고 있지 않은 너에게 #자정묵상

#열왕기상 22장 13~23절

by contents dannyk 2020. 11. 19.

본문은 성서일과에 따라 새번역으로 소개합니다.

13. 미가야를 데리러 간 신하가 미가야에게 말하였다. "이것 보시오. 다른 예언자들이 모두 한결같이 왕의 승리를 예언하였으니, 예언자께서도 그들이 한 것 같이, 왕의 승리를 예언하시는 것이 좋을 것이오.
14. "미가야가 대답하였다. "주님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지만, 나는 다만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만을 말하겠습니다."
15. 그가 왕 앞에 나아가니, 왕이 그에게 물었다. "미가야는 대답하시오. 우리가 길르앗의 라못을 치러 올라가는 것이 좋겠소, 아니면 그만 두는 것이 좋겠소?" 미가야가 대답하였다. "올라가십시오. 승리는 임금님의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 곳을 왕의 손에 넘겨 주실 것입니다."
16. 그러자 왕은 그에게 다시 말하였다. "그대가 주님의 이름으로 나에게 말을 할 때에는, 진실을 말해야 한다고 누차 일렀거늘, 내가 얼마나 더 똑같은 말을 되풀이해야 하겠소?"
17. 미가야가 대답하였다. "내가 보니, 온 이스라엘이 이산 저산에 흩어져 있습니다. 마치 목자 없는 양 떼와 같습니다. '나 주가 말한다. 이들에게는 인도자가 없다. 제각기 집으로 평안히 돌아가게 하여라' 하십니다."
18. 이스라엘 왕이 여호사밧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 그는 나에게, 길한 것은 예언하지 않고, 흉한 것만을 예언한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19. 미가야가 말을 계속하였다. "그러므로 이제는 주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내가 보니, 주님께서 보좌에 앉으시고, 그 좌우 옆에는, 하늘의 모든 군대가 둘러 서 있는데,
20. 주님께서 물으십니다. '누가 아합을 꾀어 내어서, 그로 길르앗의 라못으로 올라가서 죽게 하겠느냐?' 그러자 그들은 '이렇게 하자' 또는 '저렇게 하자' 하며, 저마다 자기의 의견을 말하는데,
21. 한 영이 주님 앞에 나서서 말합니다. '제가 가서, 그를 꾀어 내겠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그에게 물으십니다. '그를 어떻게 꾀어 내겠느냐?'
22. 그러자 그는 대답합니다. '제가 거짓말하는 영이 되어, 아합의 모든 예언자들의 입에 들어가서, 그들이 모두 거짓말을 하도록 시키겠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네가 그를 꾀어라. 틀림없이 성공할 것이다. 가서, 곧 그렇게 하여라.'
23. 그러므로 이제 보십시오. 주님께서 거짓말하는 영을 여기에 있는 임금님의 예언자들의 입에 들어가게 하셨으니, 주님께서는 임금님께 이미 재앙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내용을 한 마디로 요약을 하자면, 한 나라의 왕이 자신의 뜻을 이미 정해놓고 하나님의 뜻이 따라오기를 기다리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자신의 뜻과 반대되는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지 않게 되는 것이지요. 자기가 전쟁을 하고 싶으니 하나님이 내 뜻에 맞춰주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오늘  아합의 이야기가 비단 그의 이야기로만 들리지 않습니다. 어쩌면 오늘 우리의 모습 속에서도 이런 모습이 많이 나타날  있기 때문입니다. 저마다 하고 싶은 일을 두고 하나님을 그곳에 갖다 붙이는 그런 모습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듣는데서 마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듣고 순종하는데 이를 때까지 가야 하는 것이지요. 설령 그것이 나의 뜻과 다를지라도 말입니다. 너무도 당연한 이 신앙의 본질 앞에서 오늘도 고민하는 저를 봅니다. "주님 제가 주님을 설득하는 사람이 되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본문을 읽으며 예수님께서 십자가 죽음을 앞두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신 장면이 떠오릅니다. 피하고 싶으셨지만, 그럴 수 없으셨던 그 사랑이 새삼 놀랍고, 이 잔을 내게서 옮겨달라 기도하시면서도 끝내 내 원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을 구하셨던 그 믿음이 경이롭습니다. 육신을 입으신 참 사람이셨기에 십자가 고통이 무섭고 두려우셨을텐데, 또 창세부터 계셨던 거룩하신 참 하나님이시기에 인류의 모든 죄를 지시는 것이 너무나 처참하셨을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도를 통해 자신의 뜻을 관철하시는 것이 아니라, 기도를 통과하며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신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본문의 아합이 아닌 겟세마네의 예수님의 모습을 닮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미 재앙을 선언하신 것입니다.'(23절), 하나님 앞에 악한 왕이었던 아합은, 먼저 길르앗 라못 전쟁을 계획하고 그 다음, 자신의 계획을 뒷받침 해줄 예언자의 예언을 찾았습니다. 하나님 마음에 합한 왕이었던 다윗의 행보와는 전혀 반대되는 흐름입니다. 다윗은 먼저 하나님께 묻고, 그 다음 실행하던 왕이었습니다. 아합 왕 당시 많은 예언자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보이는 왕의 권력을 더 두려워했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답이 아니라 왕이 원하는 답을 예언했습니다. 미가야만 빼고 말이지요. 왕 앞에 말하는 예언자들에게 거짓말 하는 영을 보내어 듣기 좋은 말로 꾀어내고 것 자체가 이미 재앙을 실천하고 계신 거라고 오늘 말씀은 분명히 이야기합니다. 그것은 돌이킬 수 없습니다. 미가야를 통해 마지막 기회를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아합은 결국 미가야의 뺨을 치고 자기가 살아돌아올 때까지 가두라고 명령합니다. 하지만 아합왕은 살아돌아오지 못했습니다. 혹, 오늘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늘 달콤하기만 하다면, 이미 그 자체로 재앙이 아닌지 반드시 살펴보아야 합니다. 때때로 우리는 쓴 약이 필요한 부족한 사람들이니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자리에서, 과연 우리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만을 말씀하고 있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될 때마다 당당히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만을 말하는 사람이고 싶은 강한 욕구가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 정말 애쓰고도 있고요. 그런데 과연 내가 누구 앞에서도, 그리 말하고 있는지는 또 다른 문제인 듯 합니다. 특히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는 상황에서 이와 같은 일은 더더욱 힘든 일임을, 스스로도 겪어봤기에 너무도 잘 알고 있고 또한 겪고 있는 사람 곁에도 있어봤기에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럴 때면 늘 질문했습니다. "내가 과연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만을 전하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아직까지는 내가 소속되어 있는 곳의 눈치보다 하나님 뜻을 늘 앞세우는 선택을 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그러나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도 잘 압니다. 아마도 사회 속에서 살아가야 할 성도의 삶은 더 쉽지 않겠지요. 그렇기 때문에 결코 쉽게 말할 수는 없고, 쉽게 말해서도 안 될 것이지마는, 그럴 때마다 내 삶의 주인이 누구이신지? 내 삶이 생명력을 가진 이유가 무엇인지를 뚜렷하게 기억하며 살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간절히 간구합니다. "주님. 나는 다만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만을 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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