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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아, 잘해보자/자고 있지 않은 너에게 #자정묵상

#마태복음 25장 1절~13절

by CloudChurch2020 2020. 11. 8.

본문은 성서일과에 따라 새번역으로 소개합니다

1   "그런데, 하늘 나라는 저마다 등불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에 비길 수 있을 것이다.
2   그 가운데서 다섯은 어리석고, 다섯은 슬기로웠다.
3   어리석은 처녀들은 등불은 가졌으나, 기름은 갖고 있지 않았다.
4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자기들의 등불과 함께 통에 기름도 마련하였다.
5   신랑이 늦어지니, 처녀들은 모두 졸다가 잠이 들었다.
6   그런데 한밤중에 외치는 소리가 났다. '보아라, 신랑이다. 나와서 맞이하여라.'
7   그 때에 그 처녀들이 모두 일어나서, 제 등불을 손질하였다.
8   미련한 처녀들이 슬기로운 처녀들에게 말하기를 '우리 등불이 꺼져 가니, 너희의 기름을 좀 나누어 다오' 하였다.
9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이 대답을 하였다. '그렇게 하면, 우리에게나 너희에게나 다 모자랄 터이니, 안 된다. 차라리 기름 장수들에게 가서, 사서 써라.'
10   미련한 처녀들이 기름을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왔다. 준비하고 있던 처녀들은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혔다.
11   그 뒤에 나머지 처녀들이 와서 '주님, 주님, 문을 열어 주십시오' 하고 애원하였다.
12   그러나 신랑이 대답하기를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너희를 알지 못한다' 하였다.
13   그러므로 깨어 있어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각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10명의 처녀들은 저마다 등불을 준비하여 신랑을 맞으러 나갔습니다. 그런데 신랑이 늦어졌고, '모두' 졸다가 잠이들고 말았습니다. 한 밤중에 신랑이 온다는 소식에 '모두' 깨어서 제 등불을 손질하였습니다. 여기까지 10명의 처녀들에게 차이가 없습니다. 이처럼 이 비유는 어리석은 5명과 슬기로운 5명에게 엄청난 차이가 있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작지만 결정적 차이가 하나 있었습니다. 기름도 준비했는가입니다. 등불을 손질하다보니, 기름이 부족하다는 것을 안 이들의 반은 통에서 꺼내 채웠고, 나머지 반은 사러간 사이에 신랑이 도착하는 바람에 혼인잔치에 참여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깨어 있어라"요구하시는 것은 엄청난 준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혀 졸거나 자면 안된다는 의미도 아닙니다.(5절은 10명 모두 잠들었다고 기록합니다.) '작지만 결정적' 차이를 만드는 그 지점에서 준비되어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언제든 주님을 맞을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지금 오시더라도, 또는 밤늦게 오시더라도, 그 언제 오시더라도 주님을 만날 준비가 되어있게, 항상 주님을 기억하는 삶이 깨어 있는 삶입니다. 오늘의 24시간도 그렇게 깨어있는 하루가 되길 소망합니다. 

이 말씀을 묵상할 때면 늘 "깨어서 준비하고 있어야겠다."는 적용을 하면서 묵상을 끝냈던 거 같아요. 그런데 오늘 제 이목을 끌었던 말씀은 "왜 슬기롭다는 처녀는 미련한 처녀들에게 기름을 나눠주지 않았을까?"더라고요. 뭐 이유는 아주 분명하죠. "그렇게 하면, 우리에게나 너희에게나 다 모자랄 터이니, 안 된다." 솔직히 좀... '매정하네..'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어요. 어떻게 생각해보면, "그렇게 하면 둘 다 모자랄 터이니"라는 말에는 이미 절대 신랑을 마중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는 거니까요. "같이 살자."는 정신이 기독교 정신 아니었나요? "함께 살 수 있는 길"을 위해 애쓰던 삶이 기독교적 삶이 아니었나요? 충분히 해볼 수 있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아주 큰 걸 놓쳤어요! 그건 1절 "신랑을 맞으러 나간"이라는 거에요. 다시 말해, 열 처녀는 신랑을 맞이할 목적으로 나간 거에요. 신랑을 맞이하러 나간다면, 기쁨으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죠. 신랑을 맞으러 나가면서 별 준비도, 채비도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부자연스러운 일이죠. 그렇지 않을까요? 때문에, 애초에 "신랑을 맞이하는 마음상태"에서부터 차이가 생긴 거고, 그 마음이 준비하는 태도에도 영향을 끼친 거죠. 고로 이 말씀은 제게,, 단순히 "늘 깨어 준비하고 있어야겠다."보다는 "왜 내가 깨어 준비해야 하는지"를 분명히 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말씀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왜" 깨어 준비하라는 명령에 순종하고 있나요?

우리의 신앙은 내 기준에 맞춰 준비를 하는 것이 아닌, 주님의 기준에 맞춰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다섯 처녀들은 분명 자신들의 생각에 이정도면 될 것이라는 생각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신랑이 오지 않자 이들은 한계에 직면했지요.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기준에 맞춰 신앙생활하면 평소에는 잘 사는 것 같고 신실한 삶을 사는 것 같지만, 예상치 못한 일들 앞에서는 무너질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슬기로운 다섯 처녀들이 매정하다고 잠시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것 좀 나눠주지…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신앙은 남의 것을 갖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부모님의 신앙을 빌려다가, 배우자의 신앙을 빌려다가, 친구의 신앙을 빌려다가 우리 신앙의 완전함을 채우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말이지요. 
오늘 하루도 나의 기준이 아닌 하나님의 기준으로 바꾸는 삶이 되길 기도합니다특별히 기도의 분량과 말씀을 읽는 분량을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대로 살기를 다짐해봅니다

오늘 하나님 나라 비유에 등장하는 열처녀가 등장하는 목적은 '저마다 등불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가는 것'입니다.  등불을 들고 신랑을 기다리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필요한 준비물은 '등불'입니다. 등불은 열처녀가 모두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희비가 엇갈린 준비물은 '기름통'입니다. 안전장치. 신랑이 언제 올지 확실하게 알 수 없는 상태에서 5명의 처녀는 슬기롭게 여분의 기름을 준비했지만, 다른 5명의 처녀는 미처 그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 생각의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신랑이 언제 올 지 알 수 없다'는 것이 우리의 실제 상황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신랑이 오는 날에 대해 별로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한번 살고 한번 가는 인생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주어지는 기회입니다. 등불을 모두 다 가지고 있었던 것처럼 말이지요. 그러나 언제일지 알 수 없는 마지막 날을 준비하는 자세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신랑이 오는 날'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신랑이 오는 때를 염두에 두고 준비하는 삶의 자세로 살아가는 오늘' 일때 그것이 복된 삶으로 우리의 마지막 순간을 완성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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